한 번 고른 거래처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저는 30년째 같은 도매상에서 두부를 받아요.
비싸도 바꾸지 않아요.
가게 맛은 거래처에서 절반 이상 결정돼요.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서 42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말씀이셨다.
이곳은 점심시간이면 자리가 없을 만큼 붐비지만,
메뉴판엔 여전히 ‘국밥 7,000원’이 적혀 있다.
물가가 몇 번을 올랐는데도 이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
그 비결은 단지 원가 절감이나 운영 노하우에 있지 않다.
오랜 거래처와 맺은 ‘신뢰 기반의 관계’가 핵심이었다.
노포가 수십 년간 거래처를 유지하며,
불확실한 외식 시장 속에서 어떻게 안정된 품질과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사장님의 국밥집을 바라 보았을 때
단순해 보이는 ‘식자재 배달’이
사실상 노포 생존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백엔드 전략이라는 걸 보여준다.
거래처를 고른다는 건, 맛과 품질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
사장님네 국밥집은 두부와 선지를
‘서울 동묘시장 3번 출구 뒤 도매상’ 한 곳에서만 받는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세 번, 정확히 오전 6시에 납품이 오고
사장님은 항상 같은 분과 인사를 하셨다.
“오늘 선지 상태 좋아요?”
“오늘 건 기온 낮아서 더 탱글탱글해요.”
오고 가는 짧은 대화는 사실,
가게 품질 유지의 출발점이자 빠져서는 안되는 핵심 절차다.
사장님은 말씀 하셨다.
“사람들이 국밥집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재료가 매일 똑같이 들어오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즉, 거래처는 단순한 납품자가 아니라
‘맛을 구성하는 공동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노포가 수십 년간 맛을 지키는 데 성공한 이유는
좋은 거래처를 고른 게 아니라,
한 번 고른 거래처를 끝까지 지켜낸 태도에 있었다.
맛은 변하지 않아야 하고,
그 맛을 구성하는 재료가 매일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내가 손해 봐요, 대신 믿음은 안 깨지죠 가격보다 관계를 선택하는 전략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거래처 제안이 안들어 올 수 없다.
사장님 역시 종종 거래처 제안을 받는다고 하신다.
“사장님, 저희가 지금 두부 단가 더 낮출 수 있어요.
맛도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단칼에 거절하신다고 한다.
“난 싸다고 바꾸지 않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납품 끊긴 적 없고,
맛도 그대로예요.”
이 처럼 노포 사장들은 단가보다 ‘공급의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 번 거래처가 바뀌면,
그에 따라 조리 순서, 간 비율, 삶는 시간까지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거래처가 바뀌는 순간
가게의 모든 ‘내부 리듬’이 흔들린다.
사장님네 노포는 2002년쯤 선지 단가가 갑자기 올라
일시적으로 손해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장은 당시에도 공급처를 바꾸지 않았다.
사장님은 말한다.
“그때 바꿨으면 지금 이 맛 안 나왔을 거예요.”
결국 노포의 거래처 관리는
‘장기 생존을 위한 감정적 계약’에 가깝다.
표준화가 아닌 신뢰 기반의 누적 관계가
변동성 높은 외식업에서 생존의 핵심이 된 것이다.
거래처와의 관계는 서로의 운영 리듬을 맞추는 일이다
사장님네 노포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6시에 납품을 받는다.
그 시간은 정확히 사장이 육수 끓이기 시작하기 직전이다.
만약 납품이 30분만 늦어져도
국물의 시작 타이밍이 밀려서
하루 영업에 큰 차질이 생긴다.
그래서 사장은 납품업체 기사와 ‘시간 감각’을 정확하게 공유한다.
출발 전에 한 번,
도착 5분 전에 다시 한 번 문자를 주고받는 단순한 루틴.
이건 계약서에 없는 내용이다.
그냥 오랜 시간 쌓인 합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납품기사도 사장님의 루틴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사장님, 오늘은 4분 빨라요. 육수 더 끓이시겠네요?”라고 웃으며 말한다고 한다.
이처럼 거래처와의 관계는 단순한 배송이 아닌
‘운영의 타이밍을 공유하는 협력의 구조’로 발전된다.
이런 관계가 유지되면
작은 문제가 생겨도 서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거래처에서 “오늘 선지 상태가 좀 물러요”라고 말하면
사장님은 “그러면 삶는 시간 3분 더 늘릴게요.”라고 답한다.
이런 유연한 조율이 가능해지면
가게 운영에 흔들림이 없다.
좋은 거래처 하나가, 마케팅 100번보다 강하다
정릉의 또 다른 노포 사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장사는 입소문이 아니라, 거래처에서 시작해요.
물건이 정확히 들어오고,
언제나 같은 품질이면
그게 제일 좋은 마케팅이죠.”
이 말처럼,
노포의 운영은 앞에서 보여주는 장사보다
뒤에서 받쳐주는 거래의 리듬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단골이 다시 오는 이유는
‘그때 그 맛’이 항상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맛의 절반은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품질로 오는 식자재'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수익을 줄여도 지킨 원칙 (2) | 2025.07.22 |
---|---|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지역 주민이 만드는 매출 커뮤니티 연계 비즈니스 (2) | 2025.07.21 |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이 가게는 내가 죽으면 끝, 계승 없는 노포의 딜레마 (2) | 2025.07.19 |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노포의 오픈 클로즈 루틴 분석 규칙이 만든 신뢰 (1) | 2025.07.18 |
노포의 비즈니스 전략 한 노포 식당의 매일 같은 시간에 여는 시간 관리 (0) | 2025.07.18 |